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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태종실록

답답하다 사헌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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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5년 10월 24일 사헌부에 명하여 서북면 행대 감찰 허척의 살인죄를 조사하게 하다

허척이 의주에 서북면 검찰 별감으로 파견되었을 때 흥리인(외지에서 사무역을 하는 사람) 오종길과 와주(그 우두머리)인 최영기를 처형한 사건이 있었다. 원래는 사형 집행 전 임금에게 알려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기에 태종이 이를 알고 사헌부에 물었다.

 

사헌부 서선 : 마음대로 흥리인과 와주를 죽였으니 허척의 잘못입니다.

 

의정부 허지 : 육전(六典)을 보니까 흥리인을 죽인 허척은 죄가 없다고 하네요.

 

태종 : 흥리인은 마땅히 죽여야 되지만, 와주도 마땅히 죽여야 되냐?

 

서선 : 와주는 마땅히 죽일 것이 아닙니다.

 

태종 : 전에는 죽여야 한다더니? 다시 조사해.

 

태종 : 알고 보니 허척이 의정부에 보고했는데 나에게 말을 안 한 거였네. 그런데 와주는 왜 죽였지? 육전에는 이 법이 없는데, 사헌부는 왜 이걸 안다루고 허척의 죄를 묻는 거야?

 

서선 : 육전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와주 또한 마땅히 죽여야 됩니다.

 

태종 : 가벼운 죄라도 정당하게 다뤄야지, 사람을 죽일 죄가 아닌데 죽인 것이 맞는 거냐?

 

서선 :...

 

태종 : 사헌부 왜 이럼?

 

태종 : 사헌부 못 믿겠으니까 사간원 너네가 알아봐.

 

사간원이 조사하기 시작하자, 허척은 도망쳤고 대신 그의 형인 허주와 허조를 가두었다. 허척을 도망치게 했다는 죄로 서선을 탄핵하고 허척의 보고를 듣고도 태종에게 아뢰지 않은 조영무와 허지를 논핵했다.

 

사간원 : 사헌부에서 처음엔 와주 최영기가 죽은 게 합당하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합당하지 않다고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대사헌 박신 등을 파직시키세요. 또 허척이 흥리인 오종길과 와주 최영기를 잡아다 사형을 내릴 것을 의정부에 보고했는데, 의정부에서 임의로 공문을 보냈습니다. 조영무와 허지를 문책하세요.

 

태종 : 사간원의 말이 옳아. 다만 원래부터 사무역을 엄금했으니 조금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야. 알았으니 다시 거론하지 마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2주 뒤인 11월 16일 허척의 직첩을 거둬 수군에 붙이고, 그의 형들을 방면하고, 서선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박신 등은 귀양 보냈다. 허척은 도망쳤다가 한 달 뒤인 12월 29일 허척이 자수하니 귀양보냈고, 1년 뒤 용서하여 경외종편시켰다.

 

태종이 겉으로 내세운 논쟁거리는 와주를 죽여도 되느냐였다. 태종과 사헌부의 의견은 끝까지 맞지 않았다. 태종이 한 번 더 조사할 기회를 줬는데도 변함이 없었다.

 

사실 태종이 사헌부에게 원했던 대답은 이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무역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된 자를 처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허척이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을 무조건 태종이 알고 있었어야 했다. 태종은 허척이 아뢰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걸 사헌부에게 알아오게끔 시켰으나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결국 사간원의 조사에 의해 의정부 관리들이 방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핀트를 잘못짚은 사헌부는 대사헌이 탄핵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허척은 단지 겁을 먹고 도망쳤던 게 잘못이었을 뿐 큰 죄를 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양 보낸 뒤 1년 뒤 용서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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