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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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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들: 풍문조작단 이번엔 조선의 광대 이야기? 세조 실록에 기록된 40여건의 기이한 현상, 그 뒤에는 바로 광대들이 있었다?! 조선 팔도를 무대로 풍문을 조작하고 민심을 뒤흔드는 광대패 5인방. 어느 날 조선 최고의 권력자 ‘한명회’로부터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세조’의 미담을 만들어내라는 명을 받는다. 광대패의 리더 ‘덕호’와 무리들은 목숨을 걸고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놀라운 판을 짜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뜨는 순간, 역사가 뒤바뀐다! 조선이 아주 만만하나 봅니다? 온갖 음모론이 나오네요. 기본적으로 세조와 한명회를 다룬 영화입니다. 거기에 광대를 첨가했으니 타임킬링용 코미디영화이겠네요. 근데 세조실록 어디에 나와있는지 알려줘야할 거 아냐?
남자가 기생이 되다? 영화 기방도령 불경기 조선, 폐업 위기 연풍각을 살려야 한다! "기왕지사 이리 된 김에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소? 내가 기생이 되겠단 말입니다!" 수려한 용모와 뛰어난 기예, 여심을 꿰뚫어 보는 타고난 천성의 꽃도령 ‘허색’.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기방 ‘연풍각’이 폐업 위기에 처하자 조선 최초의 남자 기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기방결의로 맺어진 25세 괴짜 도인 ‘육갑’과 함께 기획부터 홍보까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단숨에 조선 최고의 여심스틸러로 등극한 ‘허색’. 입소문이 번지며 조선 사대부 여인들의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승승장구한 것도 잠시 예기치 못한 인물의 등장으로 잘 나가던 ‘허색’의 사업은 삐거덕거리기 시작하는데… 킬링타임용 코미디 사극 영화가 나왔습니다. 이런 사극의 장점이자 단점은 ..
논란이 될 떡밥을 던지는 영화, 나랏말싸미 “이깟 문자, 주상 죽고 나면 시체와 함께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 1443, 불굴의 신념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2019년 7월 24일 개봉 예정인 영화입니다. 영화 출현진인 고(故) 전미선 배우의 추모를 위해 대외 홍보를 거의 안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저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랏말싸미는 한글창제는 과연 누가 했는가? 라는..
봉오동 전투 예습하기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습니다. 그리고 독립군 부대들의 통합과 협동을 이끌어내죠. 중국으로 침입한 일본군을 격퇴한 첫 전투이기도 합니다. 간도지방 중국 군경들이 독립군을 비호하기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죠. 한편 일본군은 아군끼리 서로 교전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전투에 참여자들을 작전훈련 미숙으로 전보 또는 강등 등의 징계를 줄줄이 당했다는군요.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일본군은 중국에 본격적인 침투를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192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의 색이 짙어질무렵 독립군이 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한 봉오동 전투였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우리의 선조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선 안됩니다. 만주에서 수많은 독립군 부대들이 등장하게 된 것도 단 하나, 애국..
봉오동 전투 예습하기 – 격전의 그날 참고로 전투인원과 사상자에 대한 기록이 다 다릅니다. 임시정부는 공을 부풀리기에, 일본군은 과를 줄이려고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인 지표만을 다루겠습니다. 홍범도 부대와 최진동의 독군부부대, 신민단이 참여한 대략 250~300명으로 치룬 전투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6월 7일 6시 30분 일본군 월강추격대대는 남양수비대와 함께 봉오동 입구에 도착합니다. 이 무렵 홍범도 부대는 이미 매복해있었죠. 이화일 소대장에게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하도록 합니다. 기습사격을 받은 일본군은 본격적으로 봉오동으로 들어갑니다. 6월 7일 8시 30분경 봉오동 하촌을 시작으로 수색에 돌입하는데 중국 순경들이 나가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수색합니다. 6월 7일 12시 일본군은 중촌에 이어 북동과 남동을 ..
봉오동 전투 예습하기 - 전초전 1919년 10월경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러시아에서 내려옵니다. 이후 북간도 지역의 대한국민회와 연합하여 정일제1군사령부를 편성하죠. 이때 안무의 국민회군과 연합합니다. 1920년 5월 봉오동에 기반을 둔 최진동의 군무도독부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합니다. 만주지역의 반일무장단체들은 1920년 초부터 두만강을 건너 일본을 습격하는 행위가 빈번했습니다. 1920년 1월부터 국경지대를 습격하는데 6월초까지 28차례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봉오동 전투 무렵 대한독립군의 병력은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계가 약 670명, 홍범도와 안무의 국민회계가 약 550명으로 총 대원 1천 2백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무기는 기관총 2문, 군총 약 9백 정 이상, 권총 약 2백 정, 폭탄(수류탄)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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