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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정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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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의 마지막 정종 2년 11월 11일 임금이 왕세자에게 선위하다. 선위하는 교서 정종의 통치는 2년 만에 끝난다. 개창군주였던 아버지와 능력 넘치는 아우의 중간에서, 어찌보면 징검다리 역할을 한 셈이었다. 사실 제2차 왕자의 난 이후 세자로 책봉되는 순간 어느 정도 정해진 수순이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말 달리고 활 잡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았는데, 즉위한 이래로 혜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재앙과 변괴가 거듭 이르니, 내가 비록 조심하고 두려워하나 어찌할 수 없다. 세자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이치에 통달하고, 크게 공덕이 있으니, 마땅히 나를 대신하도록 하라." 태조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라고도 할 수 없고,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다. 이제 이미 선위하였으니..
몰래 마시고 싶은 술 정종 2년 9월 8일 이거이·이저·이무·조영무를 위해 후원 양청에 술을 베풀다 여러 사건에서 골치를 앓은 공신들을 위해 위로의 술자리를 가졌다. 정종은 남몰래 술자리를 만들고 싶어 했나 보다.. 사관(史官) 김섭(金涉)이 입시(入侍)하였는데, 임금이 좌승지(左承旨) 민무질(閔無疾)에게 이르기를, "저건 무슨 사람인가?" 하니, 민무질이 말하기를, "사관입니다." 하였다. 도승지(都承旨) 박석명(朴錫命)이 임금의 뜻을 알고 김섭에게 눈짓하여 나가게 하였다. 술이 취하니, 임금이 일어나 춤추고, 밤이 되어 파하였다.
태조의 진짜 속마음 정종 2년 8월 21일 임금이 세자와 더불어 덕수궁에 나아가 헌수하고 매우 즐기다가 파하다 태조와 정종, 훗날의 태종이 모두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술이 한껏 취한 태조의 말을 들어보자. "밝은 달은 발에 가득한데 나 홀로 서 있네." 하고, 웃으면서 세자에게 말하기를, "네가 비록 급제(及第)는 하였지만, 이런 글귀는 쉽게 짓지 못할 것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산하(山河)는 의구한데 인걸은 어디 있느뇨?"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의 이 글귀에는 깊은 뜻이 있다." 하였다.
조박과 이거이의 악연 정종 2년 8월 1일 평양백 조준을 순군옥에 가두었다가 석방. 무고한 조박과 권진을 귀양보내다 계림 부윤(雞林府尹) 이거이(李居易)가 내게 얘기하기를, ‘내가 조준의 말을 믿은 것을 후회한다.’ 하였다. ‘무슨 까닭이냐.’ 물으니, 이거이가 말하기를, ‘조준이 사병(私兵)을 혁파할 때를 당하여, 나와 말하기를, 「왕실을 호위하는 데는 군사가 강한 것 같은 것이 없다.」 하였다. 내가 그 말을 믿고서 패기(牌記)를 곧 삼군부(三軍府)에 바치지 않았다가 죄를 얻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조박과 이거이는 악연인 것 같다. 정종은 조박과 이거이, 권진을 순군옥에 가두어 물었다. 과연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그리고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조박을 순군옥에 가두고 물으니, 조박의 말이 대성(臺省)의 ..
쌓여만가는 불신 정종 2년 7월 2일 태상왕에게 잘못 보인 참찬문하부사 조온을 완산부에 귀양보내다 태상왕이 세자에게 나쁘다고 말하여 이무와 조영무를 강릉부와 곡산부에 각각 귀양보내다 좌정승 성석린, 우정승 민제가 문무 백관을 거느리고 태상전에 나아가 이무·조영무·조온 등을 변호하다 이거이·이무·조영무·조온을 경외 종편하도록 하다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조온(趙溫)을 완산부(完山府)에 귀양보냈다. 동북면 도순문사 영흥 윤(東北面都巡問使 永興 尹) 이무(李茂)를 강릉부(江陵府)에, 서북면 도순문사 평양 윤(西北面都巡問使 平壤尹) 조영무(趙英茂)를 곡산부(谷山府)에 귀양보냈다. 제1차, 2차 왕자의 난 이후 태조는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편을 들지 않은 신하들을 괘씸하게 여겼는지, 갑자기 공신이었던 조..
가뭄에 대처하는 법 정종 2년 6월 2일 임금이 하루 종일 반성하고 근신하니 비가 억수같이 내려 사흘 만에 그치다 신하들은 가뭄이 들자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긴 것이라며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 노비변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종에게는 조심히 근신하여야 한다고 했다. 당시의 인식이 그랬다. 가뭄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신하가 사직하기도 했던 시대였다. 놀라운 건 정종이 그렇게 하니 비가 왔다는 것이다. 이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구(恐懼) 수성(修省)하여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으니, 밤이 되어서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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