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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태종실록

한양이냐 무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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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4년 7월 10일 의정부·종친·삼부의 기로 등에게 도읍에 관한 일을 의논케 하다

 

조선의 도읍은 원래 한양이었다. 그러나 정종 시절 개성으로 이사한 후 여전히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한양에서 벗어난 지 6년, 태종은 최근의 천재지변에 불안해했었다. 개성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한양에 있던 종묘와 사직을 옮기려고 했다. 신하들은 종묘를 이안하는 것에 찬성했다. 당시 신하들의 의견은 이랬다.

 

"한경(漢京)은 다만 종묘가 있을 뿐이나, 송경(松京)은 장차 자손 만세의 땅이 될 것입니다."

 

신하들 역시 한양에 다시 가는 것을 꺼려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2개월 뒤 하윤이 무악으로 가자고 청한다. 태조시설부터 무악을 수도로 밀었던 하윤이었다. 수도를 옮긴다고 하니 다시 한번 패를 꺼내 든 것이다. 태종은 무악을 살펴본 후 어디로 도읍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태종 : 하윤이 말한대로 도읍하기 딱 좋구만

 

태종 : 한양과 무악 중 어디가 좋으냐? 툭 터놓고 말해봐

 

윤신달 : 도참서에서 말하기를 이씨가 삼각산 남쪽에 도읍을 만들고 북대로를 막을 것이라고 했고, 또 세 강을 끌어당긴

다고 했습니다. 북대로와 세 강이 무악에 있으니 딱이네요.

 

유한우 : 한양은 석산이 험하고 명당에 물이 없습니다. 규국이 아니어서 지리적으로 별로예요.  

 

민중리 : 삼각산에 올라가 괜찮은 곳을 다 둘러보죠. 외산이 빙 둘러싸고 있어야 되니까요.

 

태종 : 무악은 규국이 어때?

 

민중리 : 여기도 별롭니다. 외산이 빙 둘러싸고 있어야 한다니까요.

 

이양 : 여기가 한양에 비해 엄청 좋은데요.

 

이양달 : 한양이 명당에 물이 없을 뿐 조금은 있어요. 무악은 규국에는 안 맞지만 여기 말고 아래쪽에 명당이 있습니다.

 

태종 : 내가 지리서를 보니 물을 보고 다음에 산을 보라고 돼있던데, 명당에 물이 없으니 확실히 도읍하기는 힘드네. 근데 너네들은 아버지가 도읍 세울 때 왜 말 안 함?

 

윤신달 : 저는 그때 상중이었어요.

 

유한우 : 말 안 한 건 아니고 혼자서 정할 수는 없잖아요.

 

태종 : 양달아, 도읍을 세울 때 왜 몰랐냐? 왜 한양에 가서 아버지를 속였어? 백성들이 나보고 아버지가 도읍한 곳을 버린다고 뭐라고 한다.

 

이양달 : 그때 말을 다 했었어요. 그렇지만 혼자서 정할 수 없잖아요.

 

태종 : 너네들 내 앞에서 거짓말한다 이거지?

 

태종 : 조준, 너는 도읍을 세울 때 재상이었지, 왜 한양으로 정했나?

 

조준 : 저는 지리를 몰라요

 

태종 : 알았어, 내려가서 명당을 찾아.

 

 

하윤은 여전히 무악이 좋다며 추천했다. 이틀 뒤 새벽, 태종은 도읍 최종 후보지인 무악과 한양을 정하기 위해 점을 쳤다.

 

 

태종 : 뭐로 점을 치지?

 

김첨 : 척전 말고 시초로 점을 치죠.

 

태종 : 시초가 없는데, 요새는 잘 안 하니까 정하기 어렵지 않을까?

 

김과 : 의심할 게 많아 점을 치기가 어렵겠네요

 

태종 : 고려 태조가 도읍을 정할 때 뭐로 했지?

 

조준 : 척전을 썼습니다.

 

태종 : 그럼 척전으로 하자.

 

점을 친 결과 한양은  2길(吉) 1흉(凶)이었고, 개성과 무악은 모두 2흉(凶) 1길(吉)이었다. 결국 한양으로 가는 태종이었다.

당시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한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알 수 있다.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이 건국되었으나, 아직까지 고려의 잔재가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고려 시절의 향수, 분위기, 느낌. 그게 고스란히 도읍을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한양으로 정했으면 들어가야지 새로운 곳으로 옮기려 하다니, 어지간하다.




규국 : 길지로 획정하는 범위 안의 땅

척전 : 동전(銅錢)을 던져서 점을 침

시초 : 식물의 줄기를 이용해 점을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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