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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3년 11월 22일 사헌부 관리들과의 충돌로 갑사들이 신문고를 치다
하연은 훗날 영의정까지 오르는 신하였는데, 갑사들을 놀리는 발언을 했다.
"갑사의 직책이 낮고 천하니, 어찌 세음 자제(世蔭子弟)가 할 것이냐?"
한 두 명이 아니라 갑사 전체를 욕한 것이었기 때문에 갑사들은 이를 갈고 있었다. 이날 조회가 끝난 후 갑사 10여 명이 하연에게 달려가 때렸다. 그런데 맞은 사람은 하연이 아니었다. 갑사들이 잘못 보고 신계삼을 구타한 것이었다. 이른바 사헌부 관리 구타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헌부에서는 갑사를 잡아다 힐문하고 자백서까지 받았다. 갑사들은 사헌부에서 자신들을 너무 심하게 다룬다고 생각해 태종에게 항의한다.
"지금 갑사가 감찰을 촉범한 이유로 구박(拘縛)이 너무 심하니, 궁문(宮門)을 지키는 조아(爪牙)의 갑사(甲士)를 어찌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끝까지 힐문하여 죄를 주소서."
정식적으로 법적다툼을 해보자는 이야기였다. 태종이 보기에도 사헌부가 너무 심하게 구박한 것이어서, 더 이상의 분란을 막기 위해 갑사 편을 들었다. 이에 갑사들이 신문고를 쳤다. 신하들이 걱정을 하자 태종이 말한다.
"갑사가 사헌부의 아전과 싸웠다면, 마땅히 모두 순금사(巡禁司)에 가두어 시비(是非)를 분변해야 할 것이다. 내가 들으니, 전일에 갑사들이 하연(河演)의 집을 파괴하려고 하였다 하니, 비록 한 간(間) 집이라도 어찌 파괴할 수 있는가? 갑사의 잘못이 크다."
문과와 무과의 싸움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문인들은 예전부터 군인같은 무인들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갑사들은 분노에 찬 나머지 선을 넘는 행동을 하게 되었고, 이를 태종은 우려한 것이었다. 다만 갑사들이 신문고를 칠 정도였으니, 이전까지 겪었던 차별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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