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3년 9월 25일 단기로 이숙번 등과 갑사30여 명을 데리고 동교에 몰래 나가 매사냥을 하다
신하들은 태종이 사냥하는 것을 탐탁치않게 여겼다. 눈치를 주는 신하를 뒤로하고 태종은 동교에 몰래 매사냥을 한 것을 자랑한다. 답답한 신하들은 태종을 말린다.
이저 : 전 말을 잘 못 타서 사냥하지 않습니다.
태종 : 나이도 젊은데 왜 말을 못타? 매로 사냥하는 거 즐겁네~
이저 : 매가 새를 채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주상께서 다시 나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태종 : 말 못 탄다는 거 거짓말이구만?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네.
다음날 신하들은 사냥을 그만두라고 상소를 올린다.
대간, 사헌부 : 몰래 사냥 가시니 전부 놀랐습니다. 가지 마세요.
태종 : 교외에 기러기 떼가 있다고 해서 갔지, 지금은 매우 후회하고 있어.
이틀 뒤 태종은 또 몰래 사냥을 한다.
조휴 : 또 사냥이에요?
태종 : 그럼 불교처럼 살생을 아예 하지 말까?
조휴 : 그게 아니라, 저번에 후회한다면서요?
태종 : 그럼 임금은 사냥해도 된다는 법이 없어?
조휴 : 그게 아니라 사냥하려면 일시를 정해야지, 종묘에 제사하러 가면서 사냥합니까?
태종 : 니들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사냥하러 가는 거잖아? 다시 돌아갈 거야!
조휴 : 명령을 내렸는데 어찌 안 갑니까.
태종 : ......
조휴 : 종묘에 제사하러 갑시다.
신하들 : 화나셨네. 그래도 돌아가지 맙시다.
태종 : 제사 지내러 가는 내 마음이 불안한데 사냥까지 막으니 제대로 재계할 수 있겠냐? 말위에서 하지도 못하잖아? 날짜를 잘못 잡은 거야.
결국 태종은 신하들의 건의를 묵살한다. 정종이 격구를 끝까지 끊지 못했던 것처럼, 태조의 핏줄이었던 태종도 몰래 사냥을 끊을 수 없었다. 3일 뒤 태종은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태종 : 저번에 늬들이 사냥하지 말라 했는데, 그럼 임금은 사냥을 못하냐?
이관 : 저희들은 고묘 하면서 사냥하는 것을 말린 것일 뿐입니다.
태종 : 나는 무가 집안이라 원래 사냥을 했고, 임금이 되고 난 후에는 책도 많이 읽었다. 마침 교외에 기러기 떼가 많이 와서 여가로 새벽에 매사냥을 한 것이다. 종묘를 위하여 사냥하는 예문이 있는지 너네가 한번 봐봐.
태종이 직접 대학연의의 ‘유관(遊觀)은 기체(氣體)를 기르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었다.
태종 : 이 말이 사냥을 금지하는 거야? 지나치게 즐기지 말라는 거잖아. 내가 지나치게 즐겼냐? 있으면 말해봐 봐.
이관 : ......
태종 : 따지는 게 아니라 내 뜻을 말하는 거야.
이관 : 저희도 사냥을 말리는 게 아니라 고묘랑 지형이 험해서 그랬습니다.
태종 : 알았어 물러가라.
한바탕 바람이 몰아친 후
태종 : 이관은 겁이 없네?
태종 : 문헌통고에서 제왕이 사냥하는 예(禮)를 찾아라.
김과 : 사람들은 전하가 사냥을 좋아해서 이 사태가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냥하는 예를 찾는 건 힘들어요.
태종 : 저번에 신하들이 나보고 뭐라 해서 그런 건데 넌 또 왜 그러냐?
태종 : 김첨 너는 예를 상정하는 일을 하면서 사냥하여 종묘에 천신 하는 의례는 왜 상정 안 하냐?
김첨 : 원래 미리 사냥해서 제사에 쓰는 건데, 제사 지내면서 사냥하는 경우는 없어요.
태종 : 그래? 그럼 니가 만들어.
태종은 결국 자신이 한 행동을 옳게 만들었다. 신하들의 끈질긴 반대가 무색하게 된 것이다. 몰래 매 사냥 한 번 했다가 법까지 만들어야될 상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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