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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3년 2월 13일 주자소를 설치하고, 이직·민무질·박석명·이응을 제조로 삼다
이전에 태종이 명나라 황제에게 원자의 교육을 위한 서적들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책을 사서 쓸 만큼 국내에서 만드는 경우가 적었던 것 같다. 태종이 주자소를 지으면서 대학연의, 경제육전 등 많은 책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자소의 경비는 어떻게 충당했을까? 물론 궁궐 자체에서도 내었지만 신하들에게 기부를 받았다. 이른바 삥을 뜯은 것이다.
내부(內府)의 동철(銅鐵)을 많이 내놓고, 또 대소 신료(臣僚)에게 명하여 자원(自願)해서 동철을 내어 그 용도에 이바지하게 하였다.
임금이 시키는 데 자원이 웬 말인가! 아마도 고위 관료들 위주로 받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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