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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년 4월 29일 편전에까지 사관이 입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다
임금이 말하기를,
"편전에는 들어오지 말라."
하니, 인생이 말하기를,
"비록 편전이라 하더라도, 대신이 일을 아뢰는 것과 경연(經筵)에서 강론하는 것을 신 등이 만일 들어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갖추어 기록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곳은 내가 편안히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않는 것이 가하다."
하고, 또 인생에게 말하기를,
"사필(史筆)은 곧게 써야 한다. 비록 대궐[殿] 밖에 있더라도 어찌 내 말을 듣지 못하겠는가?"
하니, 인생이 대답하였다.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
사관이 편전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편전이 왕의 사적인 공간인지는 확실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태종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으니 공식적인 석상은 아니었나 보다.. 물론 사관에게는 그런 거 없다. 너무나도 직업정신이 투철하여 동료가 귀띔을 주는데도 나는 들은 적 없다며 임금의 앞에까지 간다. 태종이 웃으며 응대하는 것은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어서일 것이다. 사건은 여기서 일단락되지 않는다.
5월 8일 경연에서 정사를 논의하다. 편전에서의 사관 입시 문제가 거론되다
사관 민인생(閔麟生)이 아뢰기를,
"지금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강론(講論)하심이 매우 정(精)하고, 온화한 말씀이 친밀하시니, 원컨대 전하께서 비록 편전(便殿)에 앉아 정사를 들으실 때라도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입시(入侍)하여 아름다운 말[嘉言]을 기록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김겸에게 일러 다시 사관(史官)의 말을 들어보라 하였다. 이첨·박신·조용·김과가 모두 아뢰기를,
"경연에 입시하는 것은 가하지마는, 어찌하여 정사를 듣는 때에 들어오려고 합니까? 신 등도 역시 전조(前朝) 신씨(辛氏)의 사관이었는데, 두렵고 위축되어 감히 뵙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인생이 아뢰기를,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은 것입니다. 어찌 감히 전조(前朝)로써 오늘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하고, 김겸이 아뢰기를,
"신이 본사(本司)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여 다시 아뢰겠습니다."
하였다.
사관 민인생은 굴하지 않았다. 경연이 끝난 후 자신의 소견을 밝힌다. 임금이 떳떳하면 무엇이든 적을 수 있다는 신념, 이 신념이 과연 사관을 편전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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