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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태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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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이 반역 사건 태종 4년 10월 18일 반역죄로 탄핵된 이거이·이저를 고향인 진주로 내려 보내다 태종이 몰래 신하들을 불렀다. "신사년에 조영무(趙英茂)가 나에게 고하기를, ‘신(臣)이 이거이의 집에 가니, 이거이가 신에게 이르기를, 「우리들의 부귀한 것이 이미 지극하나, 종시(終始) 보존하기는 옛부터 어려우니, 마땅히 일찍이 도모해야 한다. 상왕(上王)은 사건을 만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금상(今上)은 아들이 많지만, 어찌 다 우리들을 연휼(憐恤)하겠는가? 마땅히 이를 베어 없애고 상왕을 섬기는 것이 가하다.」하였습니다.’하였다. 내가 이를 듣고, 조영무에게 경계하여 누설하지 말도록 한 지 이제 이미 4년이다. 이거이도 이미 늙었고, 조영무도 또한 곧 늙을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유고(有故)하면, 이 말은 변별..
한양이냐 무악이냐 태종 4년 7월 10일 의정부·종친·삼부의 기로 등에게 도읍에 관한 일을 의논케 하다 조선의 도읍은 원래 한양이었다. 그러나 정종 시절 개성으로 이사한 후 여전히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한양에서 벗어난 지 6년, 태종은 최근의 천재지변에 불안해했었다. 개성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한양에 있던 종묘와 사직을 옮기려고 했다. 신하들은 종묘를 이안하는 것에 찬성했다. 당시 신하들의 의견은 이랬다. "한경(漢京)은 다만 종묘가 있을 뿐이나, 송경(松京)은 장차 자손 만세의 땅이 될 것입니다." 신하들 역시 한양에 다시 가는 것을 꺼려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2개월 뒤 하윤이 무악으로 가자고 청한다. 태조시설부터 무악을 수도로 밀었던 하윤이었다. 수도를 옮긴다고 하니 다시 한번 패를 꺼내 든 것이..
떳떳하지 못한 자들 태종 4년 5월 15일 과거 자신의 범죄기록을 파기시킨 이첨·박돈지·이사영 등이 탄핵 당하다 이첨이 태조 시절 왕씨의 운세를 점치다가 발각된 적이 있었다. 거의 역모를 꾸민 것과 같은 행동이어서 그 내용이 담긴 문서를 형부에 보관해뒀었는데 이사영이 훔쳐 이첨에게 줬다. 유력한 증거물을 범인에게 준 것이었다. 또 박돈지가 죄를 지어 기록에 남았었는데 이사영이 그 문안을 찾아 동그라미를 쳤다. 모두 이사영이 관여된 사건이었다. 국가의 공식문서에 손을 댄 것이다. 형조에서 일하던 이사영이 이 둘의 아킬레스건을 알았던 것이다. 죄인의 최후 변론을 들어보자. 이첨 : 이사영이 문서를 꺼내 준다고 해서 부탁했습니다. 박돈지 : 내가 죄 안에 동그라미를 쳤었는데 가늘어서 잘 안보였어요. 이럴 거면 그냥 흔적이 없게 ..
동료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면 태종 4년 4월 27일 사간원에서 궁중의 기밀을 누설한 좌정언 노이를 탄핵하다 태종에게 환심을 얻기 위해 이신이 장군 김보해의 혼인 예정이었던 누이를 바쳤다가 걸린 사건이 있었다. 노이가 총대를 매고 겨우 조사했고, 이에 박초가 조휴를 탄핵하고자 하니 막상 노이는 동료를 탄핵하는 건 아니라고 하여 거부했다. 노이는 동료들과 일을 하면서 트러블이 있었던 상황, 박초는 조휴와 함께 오히려 노이를 탄핵했다. 조휴 : 노이가 ‘‘주상이 외식(外飾)만 힘쓰고 실덕(實德)이 없어 썩은 참외 같고, 남의 처첩(妻妾)을 빼앗아 궁중에 들이었다’ 라고 말했답니다. 탄핵해야 돼요. 노이 : 주상이 실덕에 힘쓰지 않고 밖으로 인의를 꾸미는데 맞잖아요? 그리고 이신과 김보해가 전하를 속였는데 당연히 죄를 받았어야 해서 탄핵을..
색욕에 홀린 노비 태종 4년 2월 27일 상전을 강간한 사노(私奴) 실구지 형제와 박질을 능지 처참하다 이자지의 딸 내은이가 사노였던 실구지의 꿰임으로 박질에게 강간을 당한 사건이다. 16살에 불과했던 내은이는 부모의 연이은 죽음으로 3년상을 치러야 했다. 한양에서 살고 있는 내은이에게 사노 실구지가 경기도 과천으로 가서 살자고 했다. "상전[主典]의 의식(衣食)이 우리들 두 사람에게 있으니, 만일 우리 계교를 듣지 않는다면 장차 돌보지 않고 도망하겠습니다." 내은이는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살아가야 했었기 때문에 실구지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과천으로 내려갔다. 실구지와 그의 처남 박질은 새벽까지 내은이를 잡아두고 옷을 벗긴 후 손발을 묶고 강간했다. 내은이가 도망쳐 한성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결국 실구지 형제와 박질은..
사관, 어디에나 있다 태종 4년 2월 8일 임금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으나 사관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다 사관의 본분이란 무엇인가. 누가 뭐래도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적을 수 있는 대쪽 같은 성품을 가져야 하지 않았을까? 태종이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진풍경을 사관이 놓치지 않을리가 없었다. 태종도 부끄러운지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실록에 있는 그대로 올라간다.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실록을 만들때 임금의 모든 행동을 넣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의 검토 과정을 거쳐 기록할 만한 것만 실록에 올린다. 그럼에도 이 에피소드가 살아남았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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