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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태조실록

세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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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서연(書筵)에서 강()을 마치자, 여러 강관(講官)이 모두 나갔는데, 우보덕(右輔德) 함부림(咸傅霖)이 나와서 말하였다.

 

"들은 바가 있사온데 고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세자가 대답하였다.

 

"할 말은 다 하시오."

 

함부림이 말하였다.

 

"창기(娼妓)가 궁중에 출입한다는데 참말이옵니까?"

 

세자가 무안한 얼굴로,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겠소."

 

하였다.

태조 5(1396) 124


 



세자였던 이방석은 태조의 7번째 아들이었다.

수많은 왕자들을 뚫고 태조의 간택으로 세자가 되었다.

태조의 사심이 가득했던 세자책봉이었다.

 

하필 7번째 아들이 세자가 되었기 때문에

나머지 왕자들이 불만이 많았다.

또힌 장자가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정통성이 어긋나있던 상황이었다.

이방석은 이러한 자신에 대한 불만을 잠재웠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꼬투리 잡기 딱 좋은 소재인 여자문제로

신하들에게 망신을 당하게 된다.

이미 주위 사람들의 신뢰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나라의 첫 세자라는 점에서

정도전 같은 유력 인사들이 밀고 있었던 점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게 너무나도 중요했던 세자 자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기를 궁으로 불러들였고

들키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불만이 사그러들지 못했다.

훗날 그러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게 1차 왕자의 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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