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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신입사관 구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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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예습하기 드라마의 주인공인 구해령은 예문관 권지 여사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예문관? 권지? 여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죠. 1. 예문관 이야기 예문관은 예조 산하의 칙령과 교명을 기록하는 곳이었습니다. 즉 임금의 명령을 쓰는 곳이죠.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한 예문관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춘추관이랑 붙었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합니다. 예문춘추관이라 불렸다가 태종 때 춘추관을 분리하죠. 조선 중기쯤 돼서야 독립된 하나의 기관이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예문관과 춘추관은 성격이 비슷했습니다. 그 이유는 직원을 보면 알 수 있죠. 예문관은 13~14명의 직원이 있는데 정3품 이상의 고위관료들은 어차피 겸직이었고 정4품인 응교도 홍문관에서 겸직했습니다. 핵심은 정7품인 봉교, 정8품인 대교, 정9품인 검..
여자 사관이 만약 진짜 있었다면?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중종 14년 4월 22일, 여느 지루한 조강시간. 동지사 김안국이 파격적인 제안으로 임금의 진땀을 뺀다. “옛날에는 여사(女史)를 두어 규문 안의 일도 전부 기록하였으니, 왕이 혼자 있을 때에도 동정과 언위를 바르게 했사옵니다. 해서 후손들이 보고 배우는 바가 많았고, 어쩌고 저쩌고... ...한마디로, ‘전하의 안방사정까지 역사에 천년만년 남기자’는 말이었다. 이에 중종은 ‘요즘 여인들은 글을 잘 몰라서..’ ‘사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날의 대화는 사관의 손으로 고스란히 기록되어, 오늘날, 왕과 신하의 밀당 현장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가 되었다. 자, 여기서 발칙한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그 날 중종이 흔쾌히 신하들의 청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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