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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태조실록

태조의 최측근 황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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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의 최측근 중 황희석이란 인물이 있다.

태조의 입을 빌려 알아보기로 하자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황희석(黃希碩)은 내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부터 상시 휘하에 있으면서 방어한 공로가 있었다. 또 고려 왕조의 정몽주 등이 나라의 권력을 마음대로 농락하면서 대간(臺諫)을 몰래 꾀어서 충량(忠良)을 모함하여 해치려고 하던 즈음에, 내가 그 때 말에서 떨어져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간사한 무리들의 화가 거의 장차 나에게 미치려 하였으나, 곧 병졸을 훈련하여 나를 호위하고 그 간사한 모의를 저지시켰으니, 그 공이 크다. 문하 좌시중(門下左侍中) 배극렴 등이 나를 임금으로 추대할 때 마침 아버지 상사(喪事)를 당하여 비록 모의에 참예하지는 못하였지마는, 만약 희석(希碩)이 나를 방어한 힘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날이 있겠는가? 요사이 원종 공신(原從功臣)의 예(例)로 칭호를 내리는 것은 내가 공을 보답하는 뜻에 있어 대단히 흡족치 못하니, 개국 이등 공신 윤호(尹虎)의 예로 칭호를 내릴 것이다."』

태조 1년(1392) 11월 19일

 

상의중추원사 : 중추원 종2품 벼슬

잠저 : 왕 위에 오르기 전 살던 집이나 살던 기간

 

 

이른바 이성계사단의 초창기 멤버였다는 소리다.

태조는 황희석이 아버지 상을 당해 1등공신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참여하지 못했을 뿐이었기 때문에 2등 공신이라도 주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객관적인 자료로 공신측정을 해야 되는 관료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법한데, 그래서 태조는 그에게 상복을 입은 채로 알현을 받고, 기복출사를 시키는 등 객관적인 자료를 남기려고 한 듯하다.

 

 

심지어

 

 

『...병이 들자 왕이 어의(御醫)를 보내서 약을 쓰게 하고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으며, 사신을 보내서 문병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돌아가자 왕이 대단히 슬퍼하여 조회도 중지하고...』

태조 3년(1394) 8월 3일

 

 

황희석의 간호를 도와주고 사망 이후에는 왕실의 기일이 아닌 이상 잘 쉬지도 않던 조회를 중지해버렸다.

이러한 세세한 일까지 실록에 기록될 정도면, 태조가 굉장히 아낀 최측근 중에 하나이지 않았을까.

 

 

 

 

아들은 아버지만큼 훌륭하진 않았던 것 같다.

금주령 때 술을 마시다가 걸려서 귀양을 가기 때문이다.

공신의 아들이라 겨우 귀양(?)만 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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