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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특집

한글을 가르쳤다고 불이익을 받은 통역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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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날입니다.

 

한글날 특집으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중 하나를 가져와봤습니다.

 

한글을 가르쳐줬다고 벌을 받은 자가 있었으니, 바로 통역관 주양우입니다.

 

 



통역관은 고려 충렬왕 때부터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에서도 그 명맥이 이어지지만 미천한 출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중종 시기에는 통역관의 수가 적었나 봅니다.


중종 30년 3월 3일(1535년)

사헌부 : 주양우는 사역원에서 중국어를 배웠으나 본래 미천하기 때문에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명령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겁니다.

중종 : 나도 모르는 건 아닌데 주양우가 중국어를 알잖아. 중국어를 마스터하려면 중국에서 중국인과 이야기를 해야 돼. 그래야 나중에 써먹지. 지금 어전에서 통역할만한 자가 없어.

 


 

원래 중국어를 통역하기 위해선 명나라에 자주 가서 경험을 쌓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후에도 주양우는 인정을 받지 못했나 보네요.

 

중종 31년 2월 25일(1536년)

영의정 김근사 : 중국어를 전공하면 반드시 자주 중국에 가야 합니다. 윤개를 연속으로 들여보낸 전례가 있으니 주양우도 동지사에 이어 성절사에도 들여보냅시다. 매번 들여보내기가 좀 그러면 간격을 띄어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윤개는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좌천당한 사림이었으나 중국어에 능통해 다시 관직을 얻은 신하였습니다.

 

윤개처럼 주양우를 중국어에 능통하게 만들기 위해 영의정이 힘을 써준 셈이죠.

 

대간에서는 경험이 많지 않은 주양우를 써야 한다는 것에 불안해합니다만, 중국어 통역에 대체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감은 여지없이 터집니다. 통역 과정에서가 아니라 아예 다른 곳에서 말이죠.


중종 34년 11월 19일(1539년)

요동에서 대사성 정세호가 혼자 방에 있을 때, 명나라 유생이 찾아와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쓰는 걸 목격합니다.

 

깜짝 놀라 누구에게 배웠는지 물어보니 주양우가 가르쳐주었다고 했죠.

대사성 정세호 : 국가기밀은 작은 일이라도 누설되면 안 되니, 사신이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이 일은 중종의 귀에도 들어갑니다. 한글을 가르쳐 준 것이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것이죠.

 

죄명은 국가기밀누설죄, 사헌부와 사간원이 동시에 간언을 합니다.


중종 34년 11월 22일(1539년)

사헌부 : 예전에도 중국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비밀을 누설한 적이 있었으니 막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양우가 중국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친 것은 관계되는 바가 중대하니 추국 하여 엄중히 논죄하소서."

사간원 : 국가의 일은 작은 것도 누설하면 안 되는 것인데, 주양우는 한글을 중국 사람에게 가르쳤으니 관계되는 바가 가볍지 않습니다. 추국하여야 합니다.

 



결국 주양우는 추국을 받았지만 큰 피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4년 뒤 주양우에게 흠집을 낼 명분이 되죠.

 

사간원에서 신하들의 체직(관직이 바뀌거나 좌천시키는 것)을 건의하면서 주양우도 함께 언급합니다.

 

승문원 교리를 할 자격이 안 된다며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중종 38년 6월 22일(1543년)

사간원 : 역관들이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밀누설을 하고 있습니다. 주양우는 이러한 역관들의 행동을 막지 못하고 있으니 승문원 교리를 겸직시키면 안 됩니다.

 

 


 

중국어에 능통한 통역관을 보유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나 봅니다.

 

주양우를 전담 통역관으로 삼고 이제는 젊은 문관들에게까지 중국어를 익히라고 할 정도였네요.

 

중종 39년 4월 2일(1544년)

중종 : 젊은 문관에게 중국어 교육을 부지런히 시키고 때때로 북경에 가도록 하는 게 어떤가?

 



현재는 한글로 이름을 쓰거나 문서를 만드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한문을 사용했습니다. 공식문서에서 한글로 적는 것은 극히 드물었죠.

 

중종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주양우는 자주 중국으로 출장을 갑니다.

 

사실 통역을 한다고 해서 한글로 꼭 적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중국어를 듣고 한문으로 적으면 되니까요.

 

어차피 말하는 것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겠죠? 한글 사건 이후 실록에 특별한 기록이 없는 걸로 봐서는 무난하게 관직에 있었던 것 같네요.


주양우가 정말로 국가기밀을 유출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순수한 마음에서 중국 유생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한글로 적는 것을 굉장히 조심히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공식문서에 쓰이지 않는 일종의 은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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