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apter1/영화 리뷰

봉오동 전투 예습하기 – 격전의 그날

728x90

 

참고로 전투인원과 사상자에 대한 기록이 다 다릅니다.

 

임시정부는 공을 부풀리기에, 일본군은 과를 줄이려고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인 지표만을 다루겠습니다.

 

홍범도 부대와 최진동의 독군부부대, 신민단이 참여한 대략 250~300명으로 치룬 전투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67630분 일본군 월강추격대대는 남양수비대와 함께 봉오동 입구에 도착합니다.

 

이 무렵 홍범도 부대는 이미 매복해있었죠.

 

이화일 소대장에게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하도록 합니다.

 

기습사격을 받은 일본군은 본격적으로 봉오동으로 들어갑니다.

 

67830분경 봉오동 하촌을 시작으로 수색에 돌입하는데

 

중국 순경들이 나가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수색합니다.

 

6712시 일본군은 중촌에 이어 북동과 남동을 수색합니다.

 

 

독립군은 일본군과 맞서기 위해 부대를 총 7개 중대로 재편성했습니다.

 

최진동을 사령관으로, 홍범도를 연대장으로, 안무를 사령부 부관으로, 이원을 연대 부관장교으로,

 

1중대장 이천오는 상촌 서북방에서,

 

2중대장 강상모는 봉오동 동부 산악고지에서,

 

3중대장 강시범은 북부 산악고지에서,

 

4중대장 조권식은 서산 남부 나무 숲속에 매복하고,

 

나머지 2개 중대는 홍범도와 같이 별도로 편성하여 서북북단에 매복하면서

 

일본군 선발대를 봉오동 골짜기 깊숙이 유인했죠.

 

봉오동전투에 직접 참가한 독립군이 그린 지도 / 출처:동아일보

①홍범도 부대 ②독군부 부대 ③신민단 부대 ④의군부 부대 ⑤일본군 부대 ⑥일본군 침투로 ⑦일본군 도주로 

 

지도를 봐도 완벽하게 쌈싸먹었던 전투였네요.

 

일본군이 너무 깊이 들어가면 위험하다고 파악한 어느 순간, 독립군 부대가 덮칩니다.

 

일본군은 포위를 돌파하려고 발악을 벌이며 4시간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죠.

 

67일 오후 420분경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우레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게 됩니다.

 

일본군은 피아식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서로 죽입니다.

 

우왕좌왕하는 일본군을 보며 독립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