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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영화 리뷰

봉오동 전투 예습하기 - 전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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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0월경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러시아에서 내려옵니다.

 

이후 북간도 지역의 대한국민회와 연합하여 정일제1군사령부를 편성하죠. 이때 안무의 국민회군과 연합합니다.

 

19205월 봉오동에 기반을 둔 최진동의 군무도독부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합니다.

 

만주지역의 반일무장단체들은 1920년 초부터 두만강을 건너 일본을 습격하는 행위가 빈번했습니다.

 

19201월부터 국경지대를 습격하는데 6월초까지 28차례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봉오동 전투 무렵 대한독립군의 병력은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계가 약 670,

 

홍범도와 안무의 국민회계가 약 550명으로 총 대원 1천 2백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무기는 기관총 2, 군총 약 9백 정 이상, 권총 약 2백 정, 폭탄(수류탄) 1백 개, 망원경 7, 탄환 군총 1정 당 150발 등이었다고 하네요.

 

 

63일 박승길의 신민단 약 30여 대원이 두만강 북안의 삼둔자에 있었습니다. 두만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64일 오전 5시경 일본군 남양수비대는 두만강 남안의 쪽배 2척을 발견하고 즉시 부근을 수색합니다.

 

곧이어 신민단원 17~18명이 두만강을 건너오자 사격하기 시작하는데요.

 

신민단원들은 도강을 중지하고 대응사격을 한 후 상촌의 큰 기와집에서 휴식합니다.

 

일본군이 쫒아와 이 집을 찾아내지만 눈치를 채고 도망갔죠.

 

대신 집주인이었던 김명오라는 노인과 그의 가족들이 모두 죽게 됩니다.

 

 

66일 남양수비대가 추격에 실패하자 일본군은 증원을 합니다.

 

독립군을 잡을 인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야스카와 육군 소좌가 지휘하는 월강추격대대가 편성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홍범도의 독립군은 일찍이 봉오동 골짜기로 숨어들어갑니다. 일본군에 비해 병력이 열세였기 때문이었죠.

 

67일 새벽 330분경 일본군은 후안산 쪽으로 침입합니다.

 

당시 후안산에서는 최진포의 집에서 신민단 부대원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일본군 병사가 수색 중 의심이 들어 집의 방문을 열었고 거기엔 누워있는 신민단원들이 있었습니다.

 

급박한 상황, 신민단원 1명이 그 자리에서 바로 총을 쏘아 일본군 병사를 쓰러트렸습니다.

 

이후 신민단원들은 봉오동 쪽으로 후퇴해버리죠.

 

이번에도 신민단원을 잡지 못한 일본군은 봉오동으로 갑니다.

 

전초전에 대해 여러가지 썰이 있으나 이게 가장 맞는것 같아요.

 

영화에선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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