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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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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영화 예습하기 – 전투 전 상황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무장독립운동이 활발해지게 된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사실 무장단체들의 국내진공시도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1919년 6월 파리강화회의가 종료되는 시점과 1919년 9월~10월 간 열릴 국제연맹회의 개최 시점이었죠. 그러나 당시 무장단체들은 군사력이 형편없어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즉 무기와 탄약, 군수물자공급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감시를 피해 산간벽지에 기지를 건립했기 때문에 식량도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괜찮았으나 내실을 다지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버티고 1920년 봄부터 국내진공을 준비하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당시 국내진공작전은 실행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상해임시정부 간부들이 무력이 아닌 외교로 풀려고 했기 때..
봉오동 전투가 영화로 나온다고?! 임무는 단 하나! 달리고 달려,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라!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1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에 묻혔던 이야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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