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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도가 궁금해서 가봤습니다.
부산관의 미술관 한편에 있기 때문에 동래관과 부산관을 모두 관람하고 난 후 자연스럽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신수 유물 소개전’은 부산박물관이 기증받거나 구입한 유물과 보존처리가 끝난 유물 중 시민들에게 공개하지 못한 유물을 새롭게 소개하는 전시로, 이번 전시에는 2011년에 구입하여 장황(裝潢)을 새로이 한 <효자도 병풍(孝子圖屛風)>을 전시한다.
조선시대의 효(孝)는 충(忠)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국가통치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개념이다. 효자들의 고사를 그린 효자도(孝子圖)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1434년),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1514년),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屬三綱行實圖)』(1617년),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1797년) 등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제작된 행실도에 수록되어 효 이념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부산박물관 효자도 병풍은 『오륜행실도』에 수록된 효자도의 판본(板本)을 바탕으로 하여 그린 것으로, 배경이 되는 건물의 비중이 크고 궁중화 형식의 화려한 건물 의장과 화사한 색감이 특징이다. 19세기 작품인 이 병풍은 원래 8폭 또는 10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6폭 병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뿐 아니라 배경묘사도 세밀하여 회화성이 높은 작품이다.
총 6개의 사례가 담겨 있습니다. 모두 오륜행실도 1권에 수록된 내용이에요.
왕연약어(王延躍魚)【진(晉)나라】 - 왕연이 물고기가 튀어나오게 하다
왕연은 진나라 서하 사람이다. 구세에 어머니를 여위고 삼년을 피눈물을 흘려 거의 죽기에 이르고, 항상 젯날에 다다르면, 슬피 울기를 열흘에 이르렀다. 계모 복씨가 무도하게 대접하여, 항상 부들풀과 찌끼의 삼머리(못 쓰는 자투리)로 왕연의 옷에 두어주니, 왕연이 알지만, 말을 아니하고, 어머니 섬기기를 더욱 공근(恭謹)하게 하였다. 복씨가 일찍 깊은 겨울에 산 고기를 먹고 싶어 하여, 왕연으로 하여금 구하였지만, 얻지 못하니, 때려서 〈피가〉 흘렀다. 왕연이 물에 가서 얼음을 두드리며 우니, 홀연히 고기 한 마리가 길이가 다섯 자나 되는 것이 얼음 위에 뛰어나오거늘, 〈왕연이가〉 가져다가 어머니에게 드리니, 어머니가 여러 날을 먹었지만,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이에 〈어머니가〉 마음에 깨달아 왕연을 사랑함을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하였다. 왕연이 어버이를 지성으로 섬겨 여름이면, 베개와 자리에 부채질을 하며, 겨울이면, 몸으로써 이불을 따듯하게 하고, 융동성환(隆冬盛寒; 한겨울 심한 추위)에 몸에는 성한 옷이 없게 되어, 어버이는 맛좋은 음식이 지극히 많았다. 어버이가 죽으므로 무덤 곁에 오두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다.
즉, 자신을 못살게 굴었던 계모조차 감화시킨 것이다. 보통 계모가 괴롭히면 반항하지 않나?
설포소쇄, 오륜행실도에는 설포쇄소로 나와 있다.
설포쇄소(薛包洒掃)【한(漢)나라】 - 설포가 집안을 청소하다
설포는 한나라 여남 사람이니, 아버지가 후처를 얻으매 설포를 미워하여 내치거늘, 설포가 밤낮으로 부르짖어 울며 가지 아니하더니, 매를 맞기에 이르러서는, 마지못하여 집밖에 막을 의지하고 있어서, 일찍이 들어와 쓰레질을 하니, 아버지가 노하여 또 쫓아내므로, 동네 입구에 막을 의지하고 신혼【부모께 아침 저녁으로 뵙는 예다.】을 폐하지 아니하여 한 해 남짓이 되니, 부모가 부끄러워 도로 데려왔다. 부모가 죽으므로, 아우가 재물을 나누어서 각각 살기를 바라니, 말리지 못하여, 노비는 〈설포가〉 늙은 사람을 잡아 말하기를, “나와 더불어 한가지로 일한 지가 오래이니, 너는 능히 부리지 못할 것이다.” 하고, 밭과 집은 거친 것을 〈설포가〉 가지며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때 다스리던 것이라, 마음에 간절히 생각하고 아낀다.” 하고, 기물은 썩고 상한 것을 〈설포가〉 가지며 말하기를, “내가 본래 쓰고 먹던 것이라, 몸과 입에 편한 것이다.” 하고, 아우가 자주 가산을 없애므로, 문득 다시 이어주었다. 안 황제[安帝]가 불러서 시중 벼슬을 하게 하시었다.
즉, 부모가 미워해도 효를 다했고, 부모가 죽어 재산을 나눌 때도 적게 가진 것이다. 아무래도 설포는 천성이 착한 것 같다.
진씨양고(陳氏養姑)【한(漢)나라】 - 진씨가 시어머니를 봉양하다
진효부는 한나라 때 사람이니, 나이 십육 세에 서방을 맞아(시집을 가서), 그 지아비가 수자리(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민병)를 가게 되어, 장차 행하려 할 때에 당부하여 말하기를, “내 살고 죽음을 가히 알지 못하겠다. 다행히 노모가 계시지만, 다른 봉양할 형제가 없으니, 내가 돌아오지 못하여도, 그대가 즐겨 내 노모를 봉양하겠는가?”, 효부가 말하기를, “그리 하겠습니다.” 마침내 지아비가 죽고, 돌아오지 못하니, 효부가 시어머니 봉양하기를 게을리 아니하여, 마침내 개가할 뜻이 없으니, 그 부모가 장차 데려가서, 개가시키려 하니, 효부가 말하기를, “〈내〉 지아비가 갈 때에 내게 노모를 맡기었거늘, 내 이미 허락하였는지라. 남의 노모를 봉양하다가 능히 맡지 못하여, 남에게 허락하고, 능히 믿음을 가지게 못하면, 어찌 세상에 서 있겠습니까?” 하고, 스스로 죽고자 하니, 부모가 두려워 감히 개가를 시키지 못하니, 시어머니를 스물여덟 해를 봉양하다가 시어머니가 죽으니, 밭과 집을 다 팔아 장사지내니, 이름을 효부라 하더라.
즉, 시어머니를 봉양해달라는 남편의 말을 지켜 끝까지 개가도 안 하고 효를 다한 것이다. 28년이나 봉양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민손단의(閔損單衣)【열국(列國) 노(魯)나라】 - 민손이 홑옷을 입다
민손의 자는 자건이니, 공자의 제자이다. 일찍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후처를 취하여, 두 아들을 낳으니, 민손의 계모가 민손을 미워하여, 〈자기가〉 낳은 아들은 옷에 솜을 두어서 입히고, 민손에게는 아직 덜 핀 갈꽃을 두어 입히더니, 겨울에 그 아버지가 민손으로 하여금 수레를 모는데(몰게 하였는데), 추워서 말고삐를 놓아 버리니, 아버지가 살펴서 알고, 후처를 내치고자 하므로, 민손이 말하여 가로되, “어머니가 있으면 한 아들이 춥고, 어머니가 없으면 세 아들이 추울 것입니다.” 하니, 아버지가 그 말을 어질게 여겨 〈후처를〉 아니 내치니, 계모가 또한 감동하고 뉘우쳐, 드디어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었다.
즉, 민손은 계모에게 미움을 받았으나 내치지 말라고 해 뉘우쳤다는 것이다. 역시 공자의 제자라 큰 그림을 그린 건가?
자로부미(子路負米)【열국(列國) 노(魯)나라】 - 자로가 쌀을 져오다
중유의 자는 자로이니, 공자의 제자이다. 어버이 섬기기를 지극한 효도로 할 때에 집이 가난하여, 나물 음식을 먹으며, 어버이를 위하여 백 리 밖의 쌀을 져오더니, 어버이가 죽은 후에 남으로 초나라에서 놀 때에 좇는 수레가 일백이요, 만종(萬鍾)의 곡식을 쌓으며, 자리를 겹으로 앉으며, 솥을 벌여서 먹을 때에 이에 탄식하여 말하기를, “어버이를 위하여 쌀을 지려 하나, 가히 얻지 못하겠구나.” 하니, 공자가 들으시고 말씀하시되, “자로는 가히 이르기를 살아서 섬김에 힘을 다하고, 죽은 후에 사모함을 다한다 할 것이다.” 하였다.
즉,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 멀리서 쌀을 가져오던 자로가 부모가 죽은 뒤 더 이상 그 일이 의미가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공자가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네.
맹종읍죽(孟宗泣竹)【삼국 오(吳)나라】 - 맹종이 대나무 숲에서 울다
맹종은 오나라 강하 사람인데, 효행이 지극한지라. 어머니가 나이가 늙고 병이 중하여, 겨울에 죽순을 먹고자 하나, 땅이 얼어 죽순이 없는지라. 맹종이 대나무 숲에 들어가 슬피 우니, 이윽고 땅위에 죽순 두어 줄기가 나오므로, 가지고 돌아와 국을 만들어서, 어머니께 드리는데, 먹기를 다 마치면서 병이 나으니, 사람들이 다 이르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것이라 하더라.
즉, 맹종이 병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대나무 숲에서 우니, 하늘이 감동하여 죽순을 줬다는 것이다. 역시 지성이면 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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