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는 미처 다 못 이야기한 6.25전쟁을 다룹니다.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7월에 이미 어느 정도 세워진 작전이었습니다.
총 세 번의 시도가 있었는데요.
의외로 북한의 전력이 강해 매번 병력을 다른 전선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군의 추가 병력이 줄어들자 한국의 청년을 뽑아 미군에서 교육받게 합니다.
이들이 바로 최초의 카투사가 되죠.
8월이 되면 병력과 무기 상황이 점차 남한으로 웃어주게 됩니다.
단 한 대의 전차로 500여 명의 북한군 보병을 막아낸 사건도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를 제외한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도 위험한 상태고 성공확률도 희박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인천은 선천적으로 상륙작전에 불리한 장소였습니다.
다른 후보지는 전세 역전의 효과를 보기 어려웠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전선을 직접 확인하여 전술을 짜는 장군이었고,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9월 12일부터 인천 앞바다에 머무릅니다.
게다가 실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예비군 해병대들을 투입시키죠.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합니다.
작전 성공 후 우리나라 해병대는 인천에 남아있던 북한의 패잔병들을 소탕합니다.
이때 손원일 제독이 활약을 하죠.
미군은 서울을 수복하러 갑니다.
국군의 날이 10월 1일이 된 건 이유가 있었습니다.
느낀 점
역시 6.25전쟁 때 북한 영토를 끝까지 밀어 통일시키지 못한 게 가장 아쉽네요.
맥아더 장군이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을 상륙지로 정한 결과 국군이 반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성공해서 다행이지 만약 실패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아무리 최고의 장군이라고 하더라도 실패의 책임을 물었어야 했겠죠.
거봐라면서 모든 지탄을 받을 게 뻔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운명이 고작 장군 한 사람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니
지금까지도 미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데, 계속 내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맥아더 장군처럼 외통수에 걸려도 의견을 밀고 나갈 수 있을까요?
만약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신뢰를 넘어서는 운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애초에 타고난 승리자이거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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